백 일간의 백야.
빛은 사람을 취하게 하고 동시에 깨어 있게 해. 나는 여기서 눈을 뚜고도 꿈을 꾸네. 네가 저 빙하 앞에 서 있는 것 같아. 햇빛 아래에서 푸른빛을 내던 너의 몸.
빛뿐인 고립 속에서 나는 남극 심부의 얼음을 시추하고 그 얼음에 새겨진 육십오만 년 동안의 기억을 알아내려 해. 나에게 이런 일을 할 만한 용기도 힘도 없다는 걸 알아.
그런데도 나는 여기에 왔다.
남극과 빙하, 백야와 흑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네가 나이로비가 아닌 이곳, 얼음의 땅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환한 빙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너. 너에 대한 환상이 나를 이 얼음투성이 대륙으로 이끌었던 거야.
네게 이 노트를 전하고 싶어.
(...)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지 않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보고 싶다는 마음.
빛은 사람을 취하게 하고 동시에 깨어 있게 해. 나는 여기서 눈을 뚜고도 꿈을 꾸네. 네가 저 빙하 앞에 서 있는 것 같아. 햇빛 아래에서 푸른빛을 내던 너의 몸.
빛뿐인 고립 속에서 나는 남극 심부의 얼음을 시추하고 그 얼음에 새겨진 육십오만 년 동안의 기억을 알아내려 해. 나에게 이런 일을 할 만한 용기도 힘도 없다는 걸 알아.
그런데도 나는 여기에 왔다.
남극과 빙하, 백야와 흑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네가 나이로비가 아닌 이곳, 얼음의 땅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환한 빙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너. 너에 대한 환상이 나를 이 얼음투성이 대륙으로 이끌었던 거야.
네게 이 노트를 전하고 싶어.
(...)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지 않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보고 싶다는 마음.
최은영 <한지와 영주> 발췌